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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몽의 하루

잊어야 산다 [좋은생각 메일진 제2378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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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야 산다 [좋은생각 메일진 제2378호]

sound4u 2011. 9. 20.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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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었는데 막상 그렇다는 답변을 받고보니,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났다.

생각이 많은 나는 어제 밤 10시부터 밤 1시까지 원없이 생각을 실컷 했다.
숙제도 하고, 문서 스캔도 하고, 어디 업데이트할 일도 하고 그러긴 했는데.
먹먹했다.

밤에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뒤숭숭하다. 머리도 멍..하다.


이런 뒤숭숭한 상황에 꺼내어본 메일진 하나가 참 와닿아서 옮겨본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다 잊고 매일매일 새로 시작한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자!
결과보다는 그 과정과정이 소중하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소중했던걸 더 생각해보자.


사람을 죽이는 글이 있지만,
반대로 죽은 사람 살리는 글도 있어
이 세상은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모양이다.

이왕이면 살리는 쪽으로 생각을..해봐야겠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어르신들의 지혜를 구해봐야겠다.


제목: 잊어야 산다
출처: http://www.positive.co.kr/good/70479_48_134
(최명덕 교수와 함께하는 즐거운 탈무드 여행)

그 일이 생각나면 당장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사나이가 있었다. 그 일이 생각나면 밤새 술 퍼 먹고 집안 살림을 다 부숴도 마음이 시원치 않은 사나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여 국무총리가 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유대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인물 중의 하나인 구약 성서의 요셉이라는 인물이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편애는 형제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왔다. 배다른 형제 요셉을 미워하던 그의 형들은 계략을 꾸며 요셉을 죽이기로 한다. 구사일생으로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으나, 훗날 파라오 다음으로 높은 신분의 사람이 되었다. 이집트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도 낳았다. 노예 신분이었던 신세를 생각하면 감개무량한 성공이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다. 므낫세라는 말은 '잊어버리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의 분사형으로 '잊어버림'이라는 뜻이다. 그는 왜 아들의 이름을 '잊어버림'이라고 지었을까? 그에게 잊어야만 하는 사연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잊어버리지 않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든 사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 그를 죽이려고 깊은 구덩이에 던져 놓고 자기들끼리 음식을 먹으며 하하거리던 형들의 웃음소리가 생각나면 요셉은 견디기 힘들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는데도 성폭행범으로 체포되어 옥에 갇혔던 일이 생각나면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젊은 요셉이 여자의 유혹을 이겨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거절했다(바예마아인)'는 단어가 나오면 특별한 악센트(샬셀렛)를 넣어 5초 동안 길게 영창으로 소리를 끌며 읽는다. 유혹을 거절하는 데 그만큼 갈등이 컸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힘들게 거절했는데도 억울하게 누명을 썼던 기억이 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잊자고 다짐했다. 잊지 못하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은 첫 아들의 이름을 '잊어버림'이라고 지었다.

몇 년 전 박찬욱 감독은 복수에 대한 영화 세 편,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만들었다. 일명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으로 인간은 누구나 복수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그중 <친절한 금자씨>를 살펴보자. 주인공 금자는 어린이 유괴 살해 죄명으로 감옥에 갇힌다. 문제는 그녀가 죄를 온통 뒤집어썼다는 데 있다. 금자는 복수를 다짐한다. 출소 후 차갑게 돌변한 금자씨, 착하게 살라며 내미는 전도사의 두부를 엎어버리며 한마디 던진다. “너나 잘 하세요.” 결국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에 성공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도사가 내민 두부를 던져 버렸던 금자는 스스로 두부 케이크를 만든다. 두부 케이크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그녀를 딸 제니가 뒤에서 꼭 껴안아 주고 하늘에서는 눈이 내린다.

억울한 일을 잊지 말자고, 잊어서는 안 된다며 산 사람이 있다. 친절한 금자 씨의 인생이다. 억울한 일을 잊어버리자고, 잊어야 된다며 산 사람이 있다. 요셉의 인생이다. 두 사람의 인생은 크게 대비된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동사 '더하다'에서 온 말로 '더하기'라는 뜻이다. 이름대로 요셉의 인생은 더하기 인생이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의 삶은 풍요로운 더하기를 거듭하였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지만 억울한 사연을 잊어버리고자 애썼기 때문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은 나도 살고 남도 살린 인생이 되었다. 반면 금자의 인생은 빼기 인생이었다. 이 사람 죽이고, 저 사람 죽이고 복수에 성공했으나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누구나 복수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복수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시나리오 작법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하워드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이렇게 정의한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는 매우 어렵다.” 억울한 사연을 잊어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셉은 어떻게든 잊어버리려 있는 힘을 다했으나 밀려오는 생각을 밀어내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러나 잊어버리는 일에 성공했을 때 요셉은 드라마틱한 인생을 소유할 수 있었다. 도무지 잊기 어려운 마음 아픈 과거가 있는가. 그때 그 사연은 잊어버리자. 과거에 묶이지 말자. 그리고 우리도 요셉과 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써 보자.


최명덕
건국 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이스라엘학회장, 한국이스라엘연구소장, 한국이스라엘친선협회 이사, 한국이스라엘문화원 이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역서로 《유대인 이야기》《지도로 보는 이스라엘 역사》《유대교의 기본진리》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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