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가을이면 생각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본문
가을이면 생각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누군가 나한테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 영화를 꼽는다.
영화 제목에는 8월과 어울리지 않게도 크리스마스가 있지만, 영화 속 장면들 때문인지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낙옆이 많이 떨어지는 때에 생각이 난다.
남자주인공은 자그마한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사다. 사진은 찍을때도 재밌고 좋지만,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당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더 좋은거 같다.
영화는 시나리오도 좋고, 배우들 연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잘 찍어둔 사진처럼 여러번 보아도 질리지 않고, 나중에도 기억이 남는 사진처럼 만듦새가 좋다.
보고있자니 가슴 한켠이 아릿하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촬영감독이 유명한 분(유영길 촬영감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참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몇개 있다.
[장면1]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길을 걸으며 썰렁한 이야기하면서 웃던 장면
이 생각난다. 무서운 얘기에 깜짝 놀란 여자가 엉겹결에 팔짱을 끼니, 순간 멈짓하는 남자. 사랑의 떨림이 좋았다.
어렸을때 아마 방학때였을꺼다. 느긋하게 일어날때 해가 서서히 떠서 머리 위쪽으로 올라가는걸 멍하니 보았던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장면3] 남자주인공이 마루에서 만년필을 깨끗히 씻는다. 유리컵에다가 씻는지 그래서 컵에 파란 잉크물
이 번져간다.
그런 참 소소한 일상적인 모습도 좋았다.
[장면4] 이제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았다는 걸 알고 마루에 누워서 흐득흐득 울던 주인공의 모습도 생각이 난다.
[장면5] 남자 주인공이 자기 사진을 찍는데 그게 영정사진으로 바뀌던 장면
참 마음 아픈 장면인데, 감독이 가수 김광석 '웃는 모습'의 영정 사진을 보고는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슬프고 애잔한 마음이 든다.
남자주인공의 '배려하는 사랑'을 여자주인공은 좋아하고 고마워했던거 같다.
같이 우산을 쓰고 가면서 비를 덜 맞게 우산을 기울여줄 줄 알고, 선풍기 바람을 좀더 쐴 수 있게 방향을 틀어주고, 땡볕에 아이스크림을 조용히 건내며 웃는 마음 좋은 아저씨가 그녀는 좋았을 것이다.
만나기 시작한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었을때 그녀도 배려해주는 남자주인공처럼 그를 위해 작은 배려들을 보여준다. 서로가 조금씩 닮아가고 있던 그들이었다.
병세가 악화된 남자주인공은 결국 여자주인공에게 자신의 병과 상태를 알리지 못하고, 여자주인공은 답답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유리창 너머로 남기게 되는데...
원래 이 영화 제목이 "즐거운 편지"였는데,
당시에 박신양 & 전도연 주연의 <편지>가 개봉을 해서 급히 제목을 바꾼거라고 했다.
뮤직비디오 마지막에 한석규씨의 나레이션은 마지막에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남긴 편지의 내용인가보다.
전해지지 못한 마지막 편지.
그래서 영화제목이 "즐거운 편지"였나보다.
'즐겁다'는 역설적인 표현이었겠다. 실은 슬픈 편지 또는 전해지지 못한 편지로 했어야 맞았을거 같기도 하다.
추운 겨울이 되기전 잠시나마 머무는 햇살마냥,
따뜻한 햇볕이 좋은 가을이면 문득 생각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진은 추억을 남기고, 영화는 봤을 당시에 기억과 추억을 남긴다.
ps.
이제와 생각해보니 여자주인공 이름이 '다림'이었는데, 기다린다는 뜻의 작명이었던거 같다.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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