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조용한 일상, 고요한 중에 돌아보다 본문
조용한 토요일 아침에..
토요일 아침에 귀여운 종이컵에 담긴 2천원짜리 행사상품이라는 커피를 또 마셨다.
위에 잔은 약을 먹기 위해, 점원에게 말해서 받은 물 담았던 물잔이었다.
가만히 물을 마시다보니, 잠깐 비춘 햇살에 은근한 명암이 드리워져서 컵이랑 테이블이랑 근사해보였다.
커피가 좋은건지, 커피 담아주는 종이컵(오른쪽에 프로필 사진^^)이 좋은건지, 가격이 좋은건지.. 여유가 좋은건지.
토요일 느긋한 아침에, 늦잠자고 어슬렁거리며 동네 빠리바게트에 가는게 좋다.
태풍이 지나갔나보다
어제 밤부터 태풍온다고 계속 뉴스속보 뜨고, 비가 주구장창 왔다.
이렇게 비오는 날이면, 동네에 세력싸움하는 길고양이들이 우격다짐으로 싸워댄다. 비오는 날과 구역 분할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비오는 날은 영락없이 요란스럽게 싸워댄다. 아까 한참 무시무시하게 싸우더니 그 소리도 그쳤다.
비가 그친 모양이다. 쇠판에 물 떨어지는 소리도 안 들리고, 바닥에 빗물 부딪히는 소리도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방이 고요하다.
내가 만일...
주변이 조용하니,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많이 난다.
iPad 같은걸로 TV를 봐도 되는데, 가끔 이렇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상태가 좋아서 조용히 있어보기도 한다.
어제 들은 이야기 중에 '악연' 또는 '내 생애에 악한 일'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만약 그때 그러그런 일을 참지 않고 싸웠더라면,
만약 그때 이걸 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때 그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랬으면 만나지 않았을 나쁜 일들 생각도 났다. 쓰린 기억도 사람들도 생각나고,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쓴뿌리도 슬쩍 고개를 내미는 것도 느껴졌다. 어젠 그래서 날씨도 꿀꿀한데, 마음도 무겁고 몸까지 무거워졌다.
그러던 것이 오늘 아침부터 잔뜩 비오는 것 보고,
쇠로 된 물건들에 비가 뚫어질 것처럼 오는 것, 오는 소리 들으면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만일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좀더 다른 길을 갔다면 아마 또 다른 막다른 길을 만나거나 했을지도 모르지 않나.
꼭 다른 선택이 최상의 결과를 낳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그때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들도 만만치 않게 많구나 싶기도 하다.
새옹지마라고.
나쁜게 100% 다 나쁠 수 없고, 반대로 좋은게 100% 다 좋을 수만은 없는 것 같다.
그러게 같은 사건이고 일들인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또 좋은 면도 있는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조용히 있어볼 필요가 있다.
주변에 모든 소리를 끄고, 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나보다. 그런 시간을 갖어야 하나보다.
(...) 수소문 끝에 세테스 사막 깊은 곳에 자리잡은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가르침을 구한 그에게 수도원 장 모테스는 말합니다.
"가서 당신 방에 앉으시오. 그러면 그 방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오."
침묵 가운데 고요한 시간을 가지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고, 그 내면의 소리를 통해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깨달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세상에서 받은 온갖 상처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과거의 회한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극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느 수행자는 말합니다.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비로소 보인다."
- 조신영, <침묵이 그리운 하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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