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한 까페가 몇개 있어 가끔 들어가는 Daum. 메인 페이지 슬쩍 보구 습관적으로 들어가는 '미디어다음' 혹은 '텔레비존'.. 요즘 들어 부쩍 제목이 눈에 뜨이는 "외과의사 봉달희"는 그렇게 '텔레비존' 갔다가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제목 가만히 읽다가 웃었다. 봉달희는 '봉다리'로 들리는거다. 깜장 비닐 봉지가 떠오르게시리..)
느려터진 인터넷 속도를 감수해가며 부지런히 '다시 보기'를 챙겨볼만큼 부지런하지도 않고 왠지 드라마는 그냥 주요장면만 보는게 더 좋겠단 생각도 들고해서 그냥 미디어다음에 올라오는 캡쳐화면이나 주요장면 동영상 조금씩 올라오는 것만 챙겨봤다. .... 그래도 재밌었다... 아마 실제로 봤다면 예전에 <대장금>처럼 푸욱 빠져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아마 <봉달희>하는 날을 학수고대하며 한주한주를 기대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고.
안중근 (이범수)
요즘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런 '병원 드라마'가 유행인가 본데.. 난 무엇보다 '이범수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에서 보면 맨날 건달, 양아치, 좀 덜떨어진 녀석 등..뭔가 좀 부족한 사람 역할로 나와서 망가졌던 그가 배역에 따라 이렇게도 멋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내가 더 뿌듯했다.
잘생기고 멋지게 생긴 사람이 근사한 역할을 맡는건 사실 너무 당연하지 않나. 그렇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묵묵히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꾸준히 노력했던 사람이 오랜 시간 후에 빛을 받게 되는걸 보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마치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이 그랬던거처럼.. 사람 자체도 훌륭해야겠지만 그 사람이 어느 곳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인데도 3류 양아치로만 보이기도 하고, 있는 자리에 따라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니.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니까.. 어느 회부턴가 달희를 사랑하게 된 안선생.."더 사랑하는 쪽이 약하다"는걸 몸소 보여주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맨날 소리 고래고래 지르고 버럭 승질만 내더니, 사랑에 빠지니 쩔쩔매네. 푸헐~ 달희는 아직도 잘 모르는거 같다. 안선생이 자기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참.. 그러고보니 전에 한석규가 뜨게 됐던 영화 제목이 <닥터 봉>이었던거 같은데. 거기도 봉선생이 나오는구나.
봉달희 (이요원)
오랫만에 컴백한 애기엄마 - 이요원-도 반가웠다. 예전에 <고양이를 부탁해>때 참 이쁜 배우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이 드라마에서도 덜렁대기도 하지만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랑스러운 역으로 나오나보다. 근데 이런 캐릭터 실제 세상에선 별로 환영 못 받을거 같다. 조금만 답답하고 자기보다 꿀려보이면 마구(?) 밟는 험한 세상인데.. 쩝쩝. 얼굴이 이뻐서 용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ㅎㅎ
기다리고~ 기다리고~
예전에 열심히 봤던 <종합병원> 생각도 나고. 캡쳐되어 올라온 이미지들, 사람들이 올린 하이라이트 동영상들 잼나게 봤다. 사람들이 가공한 데이터들 꽤 볼만 했다. 인터넷에 놀거리가 정말 없는건가. ㅎㅎㅎ 그래서 볼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올리는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방송 기다리고, 나는 사람들이 올린 컨텐츠 기다리고.
‘ER’와 ‘그레이 아나토미’는 미국에서 제작되어 국내에 소개된 메디컬 드라마 중 최근작이면서도 국내에 만만찮은 매니아를 확보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는 같은 의학 드라마이면서도 그 정체성은 서로 뚜렷하게 다르다. 그것은 드라마의 제목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먼저 ER는 제목 그대로 Emergency Room 즉 응급실을 소재로 하고 있는 드라마다. ER 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환자를 최대한 신속하게 진단하고 처치하고 떠나 보내고 붙잡는 역할은 분명히 흰가운을 입은 의사들의 몫으로 보인다.
...(중략)... 의학 드라마를 설계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카메라의 시선이 환자의 입장에 서는 것인가(주인공이 병원인가), 의사의 입장에 서는 것인가(의사가 주인공인가)라는 데 대한 뚜렷한 방향성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카메라는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중환자실로, 심지어는 권력과 암투, 사랑에까지 팔자걸음을 걸으며 비틀거리게 된다. 과거 우리가 보았던 의학 드라마의 전형(예를 들어 ‘의가형제’‘종합병원’)은 대개 공간이 병원일 뿐 그 주인공은 병원(환자)도 의사도 아니었다. 그 드라마에서 드라마의 배경이 병원이 된 것은 경찰, 법정, 군대 등과 같은 은밀한 특수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지 그것이 굳이 병원일 필요는 없었다.
최근 시도된 공중파의 두 의학 드라마는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과거의 틀을 벗어던졌다고 보기에는 조금 미흡하다. 드라마의 의미를 재미에 둔다면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MBC의 주말드라마 ‘하얀 거탑’의 경우는 권력의 메타포를 병원이라는 소재에서 발견한 것일 뿐 의학 드라마라는 정의를 내리기는 억지스럽다. 물론 드라마 캐스팅으로서 김명민의 변신, 이정길의 노련미, 김창환의 재발견 등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식수술을 집도하면서 췌장액이 새는 것을 발견하는 수술 대결 장면(라이벌 의사가 수술하면서 경쟁하는 모습)이나, 수술대 위에 올라가서 머리를 들이밀고 보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수술장면을 10m도 넘는 거리에 있는 관찰실에서 수술을 지휘하는 이정길의 모습에서는 리얼리티보다는 드라마적 장치만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ER도 그레이 아나토미도 아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지켜보는 의사 시청자나 일반 시청자를 공히 만족시키고 있다. 또 자칫하면 의사 세계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발끈할 만한 의사조차 이 드라마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원작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원작소설의 제목과 플롯을 그대로 가져왔고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다. 시청자는 이 드라마에서 사실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
문학이란 원래 어떤 소재를 다루어도 무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문학에 부여된 창작의 자유를 ‘아우라’로 물려 받았고, 그 때문에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발바닥에 코를 이식하건, 페이스 오프를 하건 상관 없다. ‘하얀 거탑’은 그저 원작이 가지는 권력과 암투을 실감나게 그리면 그만이고 수술이나 의료행위는 단지 그것을 보조하는 장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하얀 거탑’은 의학 드라마는 이래야 한다는 공식에서 자유롭다.
반면 SBS의 수목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이 드라마는 애초부터 의사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첫 회부터 지금까지 방영된 얼개는 이미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시청자에게 공식적으로 공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즉 의사에 초점을 맞추지만 예전의 드라마와는 달리 의사 중에서도 대중이 바라는 참 의사상을 그리겠노라는 선언을 한 셈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앞으로 의학 드라마로서 적합성에 대해 끊임없는 견제나 비판에 노출될 것이다. 드라마가 만약 애정행각이나 현실성 없는 그림을 그려낼 때마다 시청자는 불쾌해 할 것이고, 심지어는 화를 낼 수도 있다.
드라마의 초입에 외과수련의 봉달희는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심근경색환자를 돌려보내 결국 그 환자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녀는 의사로서 기본적 자세(모든 예측가능한 가능성에 대한 대비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에 대해 질타 받고, 화장실에서 구토를 한다.
이때 봉달희의 구토는 의미심장하다. 드라마의 작가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작가는 이제 그 사안에 대해 그저 풀이 죽고 상심하는 수련의의 모습이 아니라 구토를 함으로써 스스로의 실수에 대해(환자의 생명을 떠나 보냄) 역겨워하는 진실한 모습의 의사상을 부여했다. 그럼으로써 봉달희는 앞으로 진실을 표현하기를 요구받게 되었다.
여기서 진실은 여과 없는 모습으로서 의사상이다. 이제 봉달희는 원더우먼이 되어서도 안 되고 세 장기의 동시이식을 성공시키는 현란한 술기를 보여주는 의사로 성장하는 모습으로 그려져서도 안 된다. 봉달희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의사로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란 무엇인가’ ‘생명을 다루는 사람은 진정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 ‘대중이 원하는 참 의사상은 무엇인가’ 등을 그려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 ‘하연 거탑’과 달리 ‘외과의사 봉달희’의 갈 길은 험난하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현재 우리 의료계의 현실과 병원, 의사의 모습과, 그것과 공존하는 체제, 부조리, 한계 등을 보여주면서도 드라마적 장치로 인해 과장되어서도 안 된다. 단순히 재미있으면 그만인 ‘하얀 거탑’과는 달리 감동을 줄 수 있는 드라마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이 드라마의 출발은 상당히 어긋난 셈이고 제작진은 하루빨리 봉달희에게 애인을 하나 구해주고, 또 그 애인이 뇌암으로 쓰러지는 스토리를 구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