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엄마유 할머니유? 그러고보니 머리 염색 안해서 '할머니' 소리를 들었나보다. 본문
"엄마유 할머니유?"
그러고보니 머리 염색 안해서 '할머니' 소리를 들었나보다.
응급실 갔다온 다음 다음날 외래 진료 받으러 대학병원에 갔다.
열이 심하지는 않았는데 발진도 있고 열감이 느껴져서 데리고 갔다. 실은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간거였다.
대학병원은 진료 대기 시간이 길었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렸다. 환자가 많았다. 역시 대학병원이었다.
아기띠를 두르고 백팩을 매고 갔는데 아기가 늘어지니 힘에 부쳤다.
접수하고 대기석 의자에 와서 앉지도 못하고 서서 가방을 놓고 패딩을 벗고 아기띠도 풀렀다. 그때 앞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말을 건내셨다.
"엄마유 할머니유?"
헉...
나 또 할머니 소리 들은거야?
이번이 3번째다.
얼굴도 제대로 못 봤을텐데 뭘 보고 할머니냐고 했을까? 싶었는데. 순간 깨달음이 왔다. 머리 때문에 그랬구나.
그렇구나. 그동안 이눔의 새치가 듬성듬성 있는 머리 때문에 할머니 소리를 들었던거구나. 싶었다.
"엄만데 염색을 안해서 그래요."
자리에 앉으면서 딱딱하고 건조한 말투로 대답했다.
긴 대기시간이 지루해서 말 건내신걸텐데. 그게 하필 한방 먹인 말이라니.. 거참.
건조한 말투에 할머니가 머슥해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말 듣고 살갑게 반응할 수 있다면, 정말 대인배일텐데.. 소심하고 쪼잔한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다음에 또 누가 할머니냐고 물으면 그땐 뭐라고 대답해야 더 효과적으로 냉정하게 들릴려나? 그런 생각을 했다.
머리 하얗고 아닌걸로 젊고 늙은걸로 구분 짓는가보다.
그래서들 새까맣게 염색을 하고 다니시는 모양이다.
40살 전에는 염색해본 적이 없다.
운이 좋은 케이스다. 머리색이 옅은 갈색이었다. 염색 안해도 좋겠다는 소릴 들었다. 그러던 것이 30초반부터 새치가 돋아나면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33살 즈음에 갑자기 정수리에 하얗게 새치가 났다.
그즈음에 맘고생이 심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40살까지 외국에서 살았다. 그래서 염색을 할 필요도 없었다. 외국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왜 머리가 하얗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러던게 40살에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는 염색을 했다. 무서운게 한번 하기 시작하니까 안할 수가 없었다. 염색도 중독이지 싶었다.
임신하고 애 낳고 얼마 나오진 않지만 유축해서 먹이는 동안 염색을 안했다. 막상 안하고 사니 살만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왜 그렇게 염색에 목숨 걸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가르마 바꾸고 정수리를 하얗게 뒤덮던 새치도 많이 감춰진 상태다. 2주 지나면 희여져서 뿌리 염색해야 하는구나. 하면서 의무감 가지고 미용실 가는게 싫다. 그리고 염색하고나서 머리 감을 때마다 염색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싫고, 냄새도 싫다.
그전에는 남의 시선 때문에 염색을 했었는데, 이제는 남들한테 말 듣기 싫어서 하기 싫은 염색을 하고 싶지 않다.
남의 머리색깔에 관심이 없던데, 가끔 툭툭 내뱉는 분들이 던지는 말이 신경쓰이는거다.
머리 하야면 할머니인가? 그랬던거구나.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염색하지 않고 버틸 생각인데,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할머니 소리를 듣게 될까?
(내 머리인데도) 염색 안 하고 버티는게 참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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