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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몽의 하루

국문과 전공하셨죠? 그런데 왜 프로그래머가 되셨어요 (나의 IT 입문기) 본문

[글]쓰기/개발자 노트

국문과 전공하셨죠? 그런데 왜 프로그래머가 되셨어요 (나의 IT 입문기)

sound4u 2008. 3. 1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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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 전공하셨죠? 그런데 왜 프로그래머가 되셨어요 (나의 IT 입문기)

"국문과 전공하셨죠? 그런데 왜 프로그래머가 되셨어요?"

전공과 하는 일이 너무나도 달랐던 나는 회사 입사하려고 면접을 보거나, 어쩌다가 내가 비전공자라는 사실이, 그것도 국어국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사람들은 '너 참 특이하다'라는 표정으로 이 질문을 했다. 그동안 이 질문을 듣거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너무 많이 했다. 거짓말 보태고 한 100번쯤은 한 것 같다. 어떨때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싫어서 굳이 전공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면 전공쪽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었다.

그래도 어떻게 IT쪽에 입문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여러번 해서 나를 아는 이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참 낯설게 느껴지는 이 이야기를 또 해야할 것 같다.



1984년, 컴퓨터를 처음 만나다 - 초등학생(국민학생)때 만난 컴퓨터

어린 시절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부모님 덕분에 초등학교(국민학교) 5학년때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다. 자그마한 프라모델 로봇들 조립하는 것을 좋아하고, TV에서 본 "아톰"이나 "은하철도 999"나 "태권V" 등 만화영화도 좋아했던 나는 만화 속에 나오는 기계들에 대해 친근한 느낌이 있었다.

20년도 훨씬 전이었는데 아버지는 먼 미래를 내다보셨나보다.
"너희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한 20살 넘게 되면 이 컴퓨터가 생활 필수품이 될꺼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익혀야된다."고 하시면서 컴퓨터를 사주셨다.

애플II 컴퓨터를 본따서 만들었다는 '짝퉁' 애플II 컴퓨터를 샀는데, 컴퓨터를 샀으니 두달 정도 공짜로 컴퓨터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컴퓨터를 배울려고 하니 영어 알파벳부터 배워야 했다. 지금이야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영어를 배운다지만 당시에는 영어는 중학교 입학해야 배울 수 있었다. 열심히 알파벳을 익히고 영타를 배웠다. 그리고 GW-BASIC이라는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몇 line 입력해보고 RUN을 입력하면 까만 화면에 실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입력한 문장들을 보고 싶으면 LIST를 입력했다.

구구단 계산하는 프로그램은 그럭저럭 단순했는데 정말 재밌는건 X, Y 좌표에 점(도트)를 찍어서 화면에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음악이 나오게 하는 프로그램은 잡지에 나온대로 typing해서 실행시켰는데 어찌나 신기하던지.
8Bit컴퓨터라서 당시 그 큰 컴퓨터로 게임을 하려면 카세트에 카세트 테잎을 넣고 play를 버튼을 눌러야 했다.
세운상가에서 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카세트 테잎 게임이 처음 했던 게임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곁눈질만 하다

컴퓨터로 주로 게임을 하는데 사용했다. 테잎으로 하던 게임이 더 발전을 하여 키보드에 팩을 꽂아서 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을 했다. 그리고 286 컴퓨터라는게 나왔다.
언니나 남동생은 컴퓨터를 가끔씩 잘 사용했는데 이상하게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는 컴퓨터와 멀어지게 되었다.
약간 우울한 6년을 보내게 되면서 집에 있는 컴퓨터 가끔 곁눈질만 했다.


대학에 입학하다

수학과목에 약했던 나는 별로 선택의 여지도 없이 문과쪽을 선택해야했다. 과학과목이 더 재미있었는데, 문과로 가니 과학 계열 수업도 줄어들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국어와 사회과목을 많이 들어야했다. 대학은 어딜 가야겠다, 무슨 과에 가야겠다 그런 생각도 없어지게 되었다. 포기상태로 살다가 대학시험을 치루게 되었다.

돈이나 많이 벌어보자는 심사로 지원했던 경제학과에 떨어지고 좌절을 했다. 그러다가 졸업하고 글쓰는 일을 할 수 있으며 상위 몇 %에 들면 교직이수를 할 수 있다고 나 몰래 엄마가 학교가서 원서 써가지고 오신 어느 후기대학 국문과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 학교, 그 과에 가기 싫어서 대충 찍고 남은 시간에 잤는데.. 그만 합격을 했다.


컴퓨터 학원 다니다

학교에 입학하니 레포트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즈음에 "아래 아 한글 1.5"가 유행을 했다. 그 워드프로세서로 typing해서 도트 프린트로 출력했다. 당시는 MS-dos 시절이라 컴퓨터를 만지려면 따로 배워야했다. 그래서 1학년 여름방학때 컴퓨터 학원에 갔다. 간단하게 OA과정(Operating System)만 듣고 끝내려고 했는데 배우다보니까 재미있었다. 그래서 1년동안 컴퓨터 학원을 꾸준히 다니게 되었다.

다니다보니 컴퓨터 자격증(정보처리 기능사 2급) 따면 좋다고 해서 잘 모르면서 달달달 외워서 자격증 시험도 보았다. 몇번씩 떨어지고 연말에 합격을 했다. 3학년 말에는 정보처리 기사 2급 시험도 보았다. 이것도 몇번씩 떨어지고 하다가 연말에 합격을 했다. 왠지 신이 났다.


전산과 수업을 듣다

버전업을 거듭한 "아래 아 한글"을 익숙하게 다뤘다. Short cut키를 다 외우고 마치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인양 단축키 몇개로 현란하게 사용해댔다.

4학년때 남은 학점 채우려고 전산과 1학년 전공 수업인 "전산학 개론"을 교양과목으로 듣게 되었다. 달달 외워서 시험쳤지만, 이미 자격증 2개를 취득한 상태라서 수업듣는건 어렵지 않았다.
교수님이 MS-access로 프로그램을 짜라는 기말과제를 내주셨다. 윈도우 3.1을 설치하기 위해 용산에 가서 컴퓨터도 새로 샀다. 윈도우 3.1 인스톨하는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전산과 교수님께 찾아가서 인스톨하는 법도 배웠다. 열심히 여쭤보고 하려고 노력을 하니까 교수님이 기특하신지,

"자네는 졸업하고 뭘할껀가?"

하고 물으셨다. 글쎄요...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인문대학 학생이 이공계 대학 학과를 복수 전공할 수도 없었다. 그냥 교양과목 잘 듣고 내 성적표에서 별로 볼 수 없었던 A+학점 받은 것만으로 만족을 했다.







대학 졸업 후 10개월 방황하다가 컴퓨터 교육 센터에 들어가다

대학교 2학년말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었다. 기를 쓰고 정보처리기사 2급을 딴 이유도 공무원 시험 볼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너무 많은 공무원 7급 시험.. 3학년때도 떨어지고, 4학년때도 떨어졌다. 문학사로 대학을 졸업한 후 봄, 가을에 친 공무원 시험 모두 떨어졌다.

학교도 나쁘고 학과도 나쁘고 해서 어디 일반 회사 취직도 안 됐다. 정말 최악이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컴퓨터 교육센터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자격증 따고 나서 의기양양해진 나는(원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용감하다!) 프로그래머가 되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참 웃긴건 내 돈 주고 컴퓨터 교육센터 가겠다는데 그것도 시험을 봐야했다. 2군데 교육센터 시험에 낙방하고 세번째 교육센터에 합격했다. 문과학생이지만 자격증이 2개나 있다는 이유로 통과를 했던 것.

공부 열심히 하면 6개월 후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안고 교육센터에 들어갔다. 그런데 머리가 문과머리라 그런지 도통 수업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수료했으나 취직하기 어려웠다.


파란만장한 회사생활 - 그 후로 11년이 지나다

다른 전공을 한 사람이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회사 면접볼때마다 이상한 사람 취급당했고, 막상 입사해서 일할때도 트집잡히기 십상이었다.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월급 한푼도 못 받고 고생만 하다가 6개월도 못되서 퇴사했다. 이 길이 아닌가보다. 싶어서 그래픽 디자인 학원을 기웃거리던 나는 어느 학원에서 상담 교사에게 야단맞았다.

"아니, 그래 하다가 어렵다고 포기를 해요? 그런 자세로 그래픽 배우다가 또 어려우면 고만 두시게? 사람이 칼을 한번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지. 프로그램 다시 공부하세요. 한 우물을 파세요."

엄마한테 죄송하지만 다시 5개월 다른 교육센터를 다니고 취직을 시도했다. 하필 IMF가 터져서(1997년) 취직 정말 안됐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겠군.. 한숨만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Visaul Basic으로 프로그램 개발하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 학원에서는 VC++(MFC) 개발하는 것 위주로 배웠는데.. 웃긴다. 했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 진탕 고생하면서 한 4개월 Visual Basic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마침내 프로그램에 대한 감을 잡게 되었다. 어떤 tool을 사용해서 개발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최적화해서 잘 개발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전공자 출신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극복하기 위해, 잘 모르는 주제에.. 혹은 역시 기초가 부실해.. 등의 비난을 면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파란만장한 회사생활을 했지만, 그 후로..11년이 지났다.

이제 그렇게 번번히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던 국문과 출신은 나의 '주특기'가 되었다. 내가 아는 내용을 잘 설명할 수 있고 체계적으로 문서작성하는 능력이 있었다. 기획자나 디자이너 등 다른 분야사람들에게 설명할때나 메일보내고 할때도 대학다닐때 익힌 말하고 쓰고 핵심을 정리하는 능력은 빛을 발하게 되었다.


왜 프로그래머가 되셨어요?

나야말로 먹고 살기위해 어찌어찌하다보니 프로그래머가 된 사람이다.

야근 많고 잠 못자고 집에서도 일할때, 휴일반납하고 사무실 가야했을때, 잠 잘 못자서 피부 나빠질때 기미 주근깨 생기고 배만 뽈록해질때, 왠지 "폐인"의 삶을 살고 있는듯 느껴질때, 괜히 여자라서 피해볼때, 비전공자라고 얕잡힐때,... 등등 억울하고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나 웹프로그램들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때, 그들이 그걸 잘 사용해서 업무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때, 많은 사용자들이 기쁘게 서비스들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때 참 뿌듯하다.

며칠을 속썩였던 코드의 문제를 어느날 문득 해결했을때의 쾌감이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서 프로그래머가 된걸 후회하지 않는다.

단점이 장점이 될때,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일할때 나의 인생이 정말 값진 인생이 되는게 아닐까.


이 글쓴 이유

Heroes 블로그에서 이벤트를 하길래 응모해볼겸, 그리고 나의 IT입문과정을 써볼겸 겸사겸새해서 써보았다.
여러모로 참 감사할 분이 많은데, 특히 멀리 내다보고 적극 지원해주신 20년전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와 물심양면 도와주신 어머니, 그리고 부족한 국문과 졸업생을 채찍질해서 기초 공부를 가르쳐주고 항상 최신 기술에 관심을 갖게 환기시켜주는 프로그래머 남편님께 감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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