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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몽의 하루

힘들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그때를 회상하며 (IT 일을 하면서 겪었던 가장 힘들었던 일 또는 가장 기뻤던 일) 본문

[글]쓰기/개발자 노트

힘들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그때를 회상하며 (IT 일을 하면서 겪었던 가장 힘들었던 일 또는 가장 기뻤던 일)

sound4u 2008. 3. 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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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힘들었던 순간이 제일 좋았던 순간으로 기억된다니 이건 모순이다.
마치 동전에 양면처럼,
조명을 받은 물체에 가장 밝은 부분 근처에 진한 그림자가 드리우듯이..

당시에는 힘들다는 생각만 줄창 났는데 지나고보니 좋았구나 싶다.
조금 장황하게 말해서 현재의 내가 있게 해준 7년전 그 회사에 대해 쓰려고 한다.



무척 썰렁했던 입사 직후,

지인의 소개로 한 포털업체에 입사했다. 원래 나는 일반 클라이언트 개발자로 웹개발하고는 무관했었다. 다만 전에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할 수 있다길래 알지도 못하는 asp로 알바를 한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무지했으면 <table>테그에서 <tr>과 <td>의 차이도 몰랐다. 그냥 다른 분 하시는걸 베껴서 for문 돌리고 그랬다. 나중에 그 코드를 들여다보니 돌아가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한참 방황하던 때에, 우여곡절끝에 들어간 회사였는데 거참 회사 분위기가 참 묘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고. 사람이 새로 왔는데 아는척 하는 사람도 없고. 아예 없는셈치는거였다. 거참 사람들 참 싸..하네. 정이 가지 않았다.

입사하고 한, 두어달이 지나서 이유를 알게 됐다.
내가 입사하기 직전에 그러니까 2월달에 희망퇴직을 받고 직원들이 왕창 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나간 후. 내가 3월에 입사한거였단다. 다들 싫어서 떠나는 마당에 들어온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입사한 내가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흥망성쇠

99년에 오픈을 준비하고 2000년에 갑자기 뜬 회사로 순식간에 회원 200만명을 모아서 화제가 됐던 회사였다. 경품으로 "포르쉐"를 준다고 했으니 어지간한 사람들이면 다 구미가 땅겼을듯.

커뮤니티쪽(게시판, 클럽)을 잘 구성해서 팬들도 많았었던 듯. 나중에 잘못 만들어진 클럽이 시시때때로 죽어가도 다들 꾹 참고 함께 했던걸로 봐선 초창기에 커뮤니티 부분이 상당히 잘 구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시끌법적하게 오픈하고 함꺼번에 사람을 모았는데,
이후 회사는 꽤 오랫동안 정체되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채로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에 회원들도 많이 빠져 나가버렸단다.

2002년말, 2003년초 블로그를 잘 개발하여 다시 한번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가 싶었는데 역시 커뮤니티 서비스가 돈버는 쪽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 바람에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 기억속에 '추억의 포털'로 남아있을 뿐이다.  유료화 모델을 찾지 못한 대표적인 포털사이트로 그 회사를 예로 든다고 한다.


웹을 배우다

회사에서 초창기에 개발한 웹서비스를 개발, 유지보수하는데 제일 큰 문제였던건 바로 주요 웹서비스를 ISAPI로 개발을 했다는 점이었다.

ISAPI라니? 그거 책에서나 보던건데. 아니면 MS사이트에서 가끔 redirection으로 보던건데. 그걸로 짰다는거다. 그냥 스크립트 랭귀지로 개발되어 있었다면(하다못해 asp로라도) 서비스를 크게 키워나가는데 훨씬 도움이 됐을 것 같다.
ISAPI는 간단하게 말하면 C로 만든 cgi의 일종이다. 그래서 유지보수할 수 있는 사람은 C를 아는 개발자여야 했다고. 그 덕분에 내가 입사할 수 있었다. 전임자들이 상당히 기분 나쁘게 나간 탓에 설명들을 새도, 자료도 없이 그냥 이유없이 죽기도 하고 에러도 내는 ISAPI라는 괴물을 가지고 끙끙대야 했다.

종종 IIS를 reset해야 했고 심하면 재부팅을 해야했다.
잘 짜긴했는데 난해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난해한 암호문을 해독하는 기분이었다.

한번은 login쪽에 심하게 에러가 나서 코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밤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퇴근한 밤 10시가 넘어서도 버그가 잡히질 않는거였다. login이 제대로 안되면 아무것도 안되는데..하면서 걱정을 하느라고 집에 가지 못했다. 세수 여러번 하고 코드를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해결했다!
쏟아지는 피곤함에 길게 기지개를 켜면서 문득 창문을 보았는데 퍼렇게 새벽동이 터오는게 아닌가!! 나도 모르는 사이 동이 터버린 것!! 그때 느낀 피곤함과 뿌듯함은 잊을 수가 없다.

웹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입사하고 며칠 안되서 짠, asp에 대해서도 그리고 HTML이나 javascript에 대해서도 잘 모를때 짠 첫번째 event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event기간 일주일 내내 프로그램을 고쳐대야했다. 사용자들한테도 죄송하고 나 자신도 그렇게 한심해보일 수가 없었다.
웹프로그램이 쉬운거 같지만 절대로 쉽지 않다. 게다가 생각보다 까다로운게 javascript라..
그전에 웹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찐하게 고생했나보다.

있는 동안 ISAPI로 로직을 새로 개발하기도 했고 asp로 포팅시키기도 했다.
그래도 거대한 포털이라는 생태계에서 서비스 개발하고 운영되어지는거 보면서 참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사용자들의 요구사항, 요청사항들이 많아서 별아별 버그와 상황들을 겪다보니 그런 중에 얻어진 노하우들이 꽤 됐다.


사람관계를 배우다

사람들이 많이 나간 바람에 짧은 순간에 승진해서(한..2단계를 갑자기 뛴 경우가 되버렸는데) '자리가 주는 압박'이라는게 어떤건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사람관계 속에서 아프면서 마음의 키가 쑥쑥 자랐다. 사람은 밑에서부터 순차적으로 고생해가며 위로 가야지 그런 고생도 모르고 어느날 문득(자고 일어나니) 윗사람이 되면 그게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기획자나 디자이너들, SE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개발자가 일도 잘 해야하지만 사회인으로서 사람으로서 관계가 참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 회사에서 배운 점

사람에 관한 것,
책임감에 관한 것,
조직에 관한 것,
그리고 사이트를 구성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

등등 참 얻은게 많다. 당시에는 몸이 너무나도 지쳐서 어딘가 하나 썩어가는(?) 느낌이 들고 감기를 몸에 달고 살았다. 가끔 현기증도 나고. 그래서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퇴사하면서 그래도 회사가 잘 되기를 바랬다."애증"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 미운정이 고운정보다 깊다고 하지 않는가? 그랬다.

7년쯤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

힘들었던 기억과 좋았던 기억이 같다니.. 모순은 참 모순이다.
어떤 형태의 기억이든, 경험이든 각각 귀하고 소중하다.
앞으로 한 10년쯤 지나서 지금은 어떤 형태로 기억될까.

최종적인 해답은, 무슨 일을 선택했거나 간에 그 일을 즐겨야 한다는 인식이다. 고생을 즐기는 사람한테는 아무도 당하지 못한다. .... 모든 분야에서 앞장 선 사람들은, 노력과 고생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노력을 즐기는 까닭은 성공의 희열이 무엇인지를 알고, 고통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

-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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