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2012년, 그때 우리가 받았던건.. [얼룩소 갈무리] 본문
2023년 12월 4일
제목 : 2012년, 그때 우리가 받았던건..
바삭바삭 말라붙은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인류애 글들을 읽다보니 그동안 살면서 받았던 여러 도움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러고보면 저 혼자 큰게 아니듯, 혼자 살아온게 아니네요. 받은 도움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일 하나를 적어봅니다. 용기를 내서요.
그 중에 하나, 2012년에 있었던 일
1. 누구에게,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인가요?
저와 남편, 즉 저희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이에요. 2012년 봄이었구요.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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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떻게 곤란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일어났나요?
당시 취업비자(H1) 받고 일하던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져서 문을 닫게 되었어요. 영주권도 진행 중이었는데 큰일난거죠. 6년반 정도 일하던 곳이었는데, 급여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아예 뚝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부사장님이 부르시더니 미안하다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거 같다고 하셨어요. 직원들도 이미 하나둘 회사를 떠나는 중이었거든요. 그러니 저희 같은 외국인들이 더 있을 수가 없었어요.
미국에서는 생활비가 아주 많이 들어서, 월급 한두어달 못 받으면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당장 아파트 월세만 1,000달러(100만원) 이상이니까요.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래도록 고민해도 답을 찾지 못한 숙제가 저절로 끝나버린 느낌이었어요. 이제 이곳 삶을 정리해야할 때구나. 그렇게 7년반동안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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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가, 어떻게 선행을 베풀었나요?
가지고 있던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이미 두어달 급여가 끊어진 상태였고, 부끄럽지만 모아둔 돈도 별로 없었어요. 한탕주의자들은 아니었지만, 미국 삶은 돈이 잘 모이지가 않더라구요.
편도 비행기표를 2장 샀어요. 차마 국적기(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꺼를 사지 못하고, TED(유나이티드)로 700달러(약 70만원)를 샀습니다. 한국가서도 방 얻을 돈과 취직해서 돈 벌기 전까지 생활할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 빠듯했어요.
살림은 크레이그리스트에 올려서 거의 다 팔고, 사과상자 8개만 남겼어요. 옷이랑 살림가지들 몇가지. 짐을 부치고 나니 돈이 또 쑥 비더라구요. 허탈했어요.
떠나기 전날인가, 전전날인가 그동안 알고 지냈던 분들이 편지봉투랑 도화지 돌돌 말은거를 하나 주셨어요. 나중에 열어보라구요. 뭐지? 하고 열어보니, 봉투에는 여러분들이 모아주신 지폐가 들어있었어요. 도화지는 롤링페이퍼로 쓴 편지였구요. 많지 않지만, 보태쓰라는 말이 적혀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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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러분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또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그런데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 많이 들어 있어서 울컥했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게 무슨. 눈주위가 뜨뜻해졌어요. 우린 이제 떠나는데.. 다시 돌아오지도 못할텐데. 어떻게 해. 고맙고 미안하고 울컥하더라구요.
피 한방울 안 섞인 남인데, 이렇게 마음 써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너무 고마웠어요. 세뱃돈 처럼 가족한테 받은게 아니고, 그야말로 생판 남에게 돈을 받은건 처음이었어요. 아무 댓가도 없이. 그냥 도움 받은거요.
손편지에 적힌 한 문장, 한 문장을 눈으로, 머리로 새기면서 결심했어요. 잘 살아야겠다. 다시 잘 살아야겠어. 살자. 살아.
그리고 7년만에 영구 귀국을 했어요.
비록 '금의환향'의 반댓말에 가까운 많이 가벼운 상태로, 박스 8개로 시작하게 됐지만.. 그렇게 씩씩하게 처음처럼 살아가기 시작했어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벌써 11년전 일인데, 쓰다보니 지난달에 있었던 일 같이 느껴지네요. 그러고보니 그때 저희가 돈과 편지와 마음을 함께 선물 받았던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고마웠어요. 진심으로...
원글 링크 :
https://alook.so/posts/a0tmkqX?utm_source=user-share_Dotd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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