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산책으로 '충전'하고, 집으로 출근해요. [얼룩소 갈무리] 본문
2023년 6월 17일
제목 : 산책으로 '충전'하고, 집으로 출근해요.
아침마다 하는 산책 덕분에, 멋진 사진을 쌓을 수 있었다. 산책! 얼마나 신나는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산책'은 역시 그 산책이 아니다. 나의 산책에 관한 이야기:
'산책'이라는 이름의 도망

아침마다 산책을 한다. '산책'이라고 하지만, 일종의 도피다. 잠깐이나마 도망을 간다. 멀리 가지 못하고, 집주변을 배회하다가 결국에 던져놓은 집안일 생각에 돌아온다. 오늘처럼 바람 좋고 날씨 좋은 날에는 들어오기 정말 싫다.
그나마도 매일 하지 못한다.
위에 말한 산책을 가장한 도피는, 평일 주중 아침에 잠깐 할 수 있다. 바로 아이 유치원 들여보내고, 그리고 한숨 돌리면서 떠나는 짧은 여행이기 때문이다. 길게 못 가고 금방 돌아와야 하지만, 그래도 좋다.
이 동네에서는 별로 갈 만한 곳이 없다.
역시 한숨 한번 더 쉬고, 나의 짧은 도망겸 여행 경로를 설명한다. 회사들이 많이 있는 산업단지 근처에 산다. 원래 빌라가 많던 곳이 어중간하게 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애매하게 들어선 모양새다. 아파트 근처에는 빌라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집 동네를 조금 벗어나 번화한 곳으로 가면, 대규모 회사 단지다.
대충 산책길은 3개다. A코스, B코스, C코스. 제일 먼저 다녔던 A코스는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가던 다른 아파트를 통과하는 길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고서도 잘 다니다가, 작년부터 새로운 길인 B코스로 다니기 시작했다. A코스에 아이 친구들이 많이 사는데, 하필 다들 지각 등원을 하는 바람에 지나가다보니 본의아니게 인사를 하게 되어 민망해졌기 때문이다.
툴툴 거리며 걷게 된 B코스는 의외로 근사했다. 늦게 등원하는 아이 친구들과 마주치지 않아 좋았고, 무엇보다 관찰할 것이 아주 많았다. 나무와 풀과 자연이 좋다. 아파트 단지가 개발된지 25년이 되어가다보니 울창한 그늘이 만들어질만큼 나무들도 제법 자라서 보기 좋다.
처음에 신세한탄하며 걷던 것이 미안해질만큼 좋다. 그 길은, 대부분의 지하철역 내려서 회사단지로 가는 직장인들이 걷는 길이기도 하다. 지하철 내려 회사로 가는, 수많은 무리들을 따라 걸으며 소속사 있는 직원마냥 무작정 걸었다.
C코스는 스마트도서관 가려고 걷게 된 길인데, 풍경이 좋지 않다. 3주에 한번 책 대출과 반납 때문에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쁘진 않다. 그냥 걷는게 아니라 목적이 있는 것이니...
산책이 더 소중해진 이유
코로나 이전에는 한달에 한두번 스스로 이벤트를 만들었다. 후딱 급한 일만 해놓고, 미술관이나, 멀리 어딘가 특정한 장소를 다녀왔다. 하다못해 2호선 타고 당산역 내려 한강근처라도 걷다 왔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그만뒀다.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어딘가를 가는게 무서워졌다. 2021년 여름에 코로나 걸린 후,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조금씩 집주변이라도 걸어보자 싶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예 하루 일과 중에 하나로 산책을 나선다.
라고 쓰고, 잠깐 도망을 간다. 매일 주중에 아침마다 걷는다. 집주변이어도 걷다가 돌아오면 1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그 1시간이 어쩔 때는 아깝게 느껴질 때도 있다. 산책하지 말고 그 시간 사용할껄.. 내가 미쳤지. 투덜투덜..
신기한건 산책 안하고 바로 집에 와서 일해도 결국 시간이 똑같아지고, 못하는 일은 결국 못한다. 산책 안 나간다고 그 시간을 유용하게 쓰지 못했고 더 늘어졌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걸을껄.. 내가 미쳤다 정말.
그러고보니 이래도 미치고 저래도 미친거다. 그냥 맘편히 걷고말자. 하면서 깃털처럼 바람처럼, 기계적으로 간다. 특별히 볼일이 있거나 무슨 일이 있어 빨리 들어와야 하는거 아니면 걷는다.
걷다보면 풀린다.
10시까지 회사가야하는 직장인들 따라 종종 걸음으로 따라간다. 그러면서 스리슬쩍 풍경 사진도 찍고, 편의점도 기웃거리고, 길에 나온 사람 구경도 한다. 꽃구경, 나무구경, 길구경도 한다. 하늘도 한번.. 웃차 기지개켜며 올려다 본다. 그러다가 시계보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덧 산책은 소중한 나의 하루 일과가 됐다.
어느날 문득, 걷다가 머리 전구에 딱!하고 불이 들어왔다. 내가 왜 이 산책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게 됐다. 아침에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게 부러웠구나. 그랬구나. 갈 곳이 이제 더 이상 없어졌다는 사실이 서글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래. 그러면 나는 집으로 출근하는거야.
일단 산책하고나서 집으로 출근을 한 다음에, 신나게 주업무-집안일-를 시작하면 되는거야. 주업무를 부지런히 하고, 틈틈히 부업무-하고 싶은 자잘한 일들-를 조금씩 해나가면, 그러면 된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산책을 한 다음, 나는 집으로 신나게 출근한다. 단 주의사항은 퇴근은 없다. 퇴근이 없는 대신 업무 종료는 있다. 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가벼워졌다.
덧붙여 노래까지..
집으로 출근한 다음,
업무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블루투스 스피커로 풍악을 울려가며 업무를 본다. 중간중간에 노래를 따라하기도 하고, 듣던 가사가 너무 좋으면 멍 때리고 듣기도 한다. 좋다. 너무 좋아. 이런 가사는 어떻게 쓰는거야? 감탄한다.
산책이랑 음악 듣기는 내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안해도 그만이고, 안 들어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하면 훨씬 더 좋은, 그야말로 삶의 비타민이다.
참고로 주로 듣는 음악은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불리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옛날부터 알던 노래나 드라마, 영화 OST가 주를 이룬다.
퍽퍽하고 재미없고, 맨날 똑같은 삶이지만
걷다가 만나는 풍경에 감탄하며, 똑같은 공간을 우아한 까페나 콘서트장(?)으로 만들어주는 노래 덕분에 같지만 같지 않은 특별함을 경험한다. 부족함을 채워주는 여러가지에 감사한다.
원글 링크 :
https://alook.so/posts/G1t9lVG?utm_source=user-share_Dotdl1
산책으로 '충전'하고, 집으로 출근해요. by 청자몽 - 얼룩소 alookso
아침마다 하는 산책 덕분에, 멋진 사진을 쌓을 수 있었다. 산책! 얼마나 신나는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산책'은 역시 그 산책이 아니다. 나의 산책에 관한 이야기: '산책'이라는 이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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