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정훈이 만화와 <씨네21> [얼룩소 갈무리] 본문
2023년 9월 21일
제목 : 정훈이 만화와 <씨네21>
각자의 이유로 모두 소중하다. 만약 일부러 무언가를 보러 온다면, 분명 찾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존재의 이유. 문득 생각이 난 만화와 잡지 이야기 :
불쑥 생각난 잡지와 만화
<씨네21> 잡지 속 '정훈이 만화'
대학교 다닐 때, 어느날 '한겨레' 신문에서 잡지 이름 공모전을 했다. 영화잡지를 만들려는데 이름을 지어달라는거였다. 공모전에 솔깃한 나는 열심히 며칠 생각을 해서 이름을 냈다. 내가 낸 이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영화잡지가 나왔다. <씨네21>이었다. 20세기말 1990년대말이었으니, 21세기는 왠지 기대가 되는 미래이기도 했다.
당시에 두어권의 영화잡지가 더 있었는데, 단지 잡지 이름을 같이 고민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나는 <씨네21>을 더 챙겨 보기 시작했다. 잡지는 주로 지하철 가판대에서 샀다. 가끔 서점에서 사기도 했지만, 지하철 기다리면서 가판대 둘러보는게 더 좋아서 가판대에서 샀다. 2천원이었다.
<씨네21>은 오랫동안 지하철을 타야하는 내게 딱 좋은 친구였다. 두께도 얇고, 영화 장면 보는 것도 좋아하다보니 영화관련 정보를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외부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자주 오지 않는 국철을 기다릴 때도 영화잡지만한게 없었다. 한손에는 자판기 커피나 캔커피가 함께였다.
<씨네21> 중에 제일 재밌는 코너는 바로 '정훈이 만화'였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하고 기발함에 감탄하며 큭큭 웃으며 봤다. 어느 순간부터는 잡지를 사면 제일 먼저 펼쳐보기 시작했다.
잡지를 보려고 사는건지, 정훈이 만화를 볼려고 사는건지.. 헛갈릴 정도였다. 새로 영화가 개봉하면 '정훈이 만화'는 이걸 어떻게 그릴지 궁금했다. 사실 영화 잡지는 영화가 주고, 만화는 글쎄? 만화는 부록처럼 끼워넣기 코너 아니었을까? 그런데 어쩌다가 주객이 전도된건지.
처음에는 들고다니며 볼려고 잡지를 샀는데, 어느 순간엔 만화를 보려고 잡지를 사고 있었다. 어쨌든, 어느 시절에 <씨네21>과 그 속에 정훈이 만화는 꼭꼭 챙겨보던 소중한 보물이었다.
무엇이 주고, 무엇이 부였는지..
나에게 주는 의미
어떤 매체나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면 먼저 보게 되는게 있다. 메인 페이지가 눈에 제일 잘 띄니까 메인을 당연히 먼저 보게 되고, 그 다음에 눈에 띄는 곳을 보게 되는데...
일부러 찾아서 보게 되는 코너가 있다.
마치 잡지 사면, 주르륵 넘겨서 정훈이 만화부터 찾게 되듯이. 멋진 곳에, 모두가 잘 보이는 곳에 있는 글도 좋지만, 궁금해서 일부러 찾아보는 글도 좋다.
추운 지하철역에서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들고 멍 때리며 마신 다음, 그래도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넘겨보던 잡지 생각이 난다. 누군가의 글이, 누군가의 말이 일깨워주던 깨달음도 느낌도 좋았다.
작년에 정훈이 만화 그리시던 작가님이 돌아가셔서 이제 더 이상 만화를 볼 수 없다. 그러고보면 종이로 된 <씨네21>을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작년에 작가님 돌아가신 것을 알고, 남편한테 안타깝다 이야기를 하며 씨네21과 정훈이 만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나혼자만 레벨업' 작가님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했다. 아.. 나 그거 아는데, 제목이랑 내용은 대충 들어와봤어요. 그러면서 오랜만에 서로가 좋아하던 만화 이야기를 했다.
밥 먹고 사는 일, 아이 이야기, 돈 관련 걱정 등등 치이는 일상 이야기를 벗어나 즐겨 찾아보던 각자의 무언가를 꺼내놓고 이야기한 것 또한 오랜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만화나 웹툰 따위의 소소한 것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일부러 찾아보고 또 보는 아끼는 무엇이었을 수도 있다.
나에게 어떤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
치이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런걸 매일 생각한다. 큰 대접을 받고, 많은 돈을 벌고, 엄청나게 유명해지면 좋겠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낼 수 있는, 잔잔하고 소중한 무언가도 참 좋은 것 같다.
는.. 원글과 다소 관련이 없으나,
문득 떠오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오늘도 적는다. 쌓여있는 일들을 잠시 접어두고,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그래도 다행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런 잠시의 짬이 힘이 된다.
원글 링크 :
https://alook.so/posts/KmtkoqB?utm_source=user-share_Dotd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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