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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몽의 하루

어떤 기계와 나 - 친해져야하는,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는... 매주 만나야하는 녀석 - 언제쯤 친해질까? 본문

[글]쓰기/나의 이야기

어떤 기계와 나 - 친해져야하는,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는... 매주 만나야하는 녀석 - 언제쯤 친해질까?

sound4u 2011. 9. 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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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쩌다가 기계 관련 일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하고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때는 화가지망생이었고, 또 한때는 작가지망생이었다가
먹고 사는 문제로 공무원 준비생이기도 했던(공무원 준비생도 고시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실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는 나이인데.
그 옛날 링컨이 말하지 않았나? "인간은 40살때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암튼 그런 숫자로 보면 믿기 싫은 나이인데 말이다.

어쨌든 강한 의지와 뛰어난 능력으로 똘똘 뭉쳐진 것과는 거리가 먼 
어찌어찌하다가 보니 먹고 살게된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과 매일 씨름하면서 살고 있다.

이런 나에 대해서 누군가는 말한다. "뭔가 쫌 어색하다. 어리버리하다고 해야할까?"

어제도 그랬다.


이 녀석은 내가 매주 한번씩 만나는 녀석이다. 이 녀석을 정기적으로 만나기 시작한지는 9개월쯤 됐다.
요새 좋은 기계들은 완전 디지털 방식이라서 다 알아서 싹.. 다 세팅이 되기도 한다는데, 이건 아날로그 방식이다. 사람이 다 세팅해줘야 하는.. 믹서다.

나는 얘를 잘 모른다. 알려고 노력도 해보고 찾아도 보는데, 워낙 모르는게 많다보니 알 수 있는 것도 정말 없다.
어쩌다가 내가 얘 앞에 앉게 됐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 녀석과 친구를 해야만 했던 과정은 마치 내가 어쩌다가 프로그래머가 된 것과 비슷하다. 

하긴 프로그램은 알고 시작한게 아니고, 그 역시 먹고 사는 길을 찾다가..
아니고 하라고 하니까 하게되었다. 그렇게 시작됐었지.


전에 땜빵으로 일년에 몇번씩 이 녀석 앞에 앉아있을땐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의무적으로 앉아있어야 하고 들여다봐야 하니 이건 정말 부담 자체다.

이 녀석 앞에 앉아있으면 우선 뽀얀 먼지가 눈에 들어오고, 그리고 내 자신이 한심해진다.

'너 되게 구닥다리 같은데, 근데 난 널 잘 모르겠어. 휴...'

내가 아는건 켜는 순서와 끄는 순서다. 가끔 변수가 생기면 정말 답이 안 나온다.
얘는 큰 놈이고, 저 밑에 작은 놈도 있다. 챙겨야 하는 아이들이 둘이다. 큰건 큰거대로 모르겠고, 작은건 작은 것대로 모르겠다.


어제 아침
앞에 마이크들 전원이 홀랑 나가있는데 이유를 몰랐다. 
정말 몰랐다. 

순간 머리가 하애지면서 숨이 막혀왔다. 어디에 잘못이 있었는지 몰랐다. 
당황해서 앞에 가서 피아노 전원선하고 마이크선하고 바꿔 껴보다가 삐;; 소리나는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줄 알았다.


시작할 즈음에 '전문가'가 와서 Phantom Power 스위치를 켜니, 그제서야 앞에 마이크 전원이 들어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누가 내린건가?) off쪽으로 되었었나보다.

땜빵 몇년 하는동안, 그리고 이 앞에 앉아 9개월 가량 앉아있으면서도 그 스위치가 마이크쪽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었다.


반쯤 넋이 나가서, 먼지 쌓인 이 녀석을 바라봐야했다. 나 진짜 모르는게 너무 많구나.

그러고보니
대학교 졸업하고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앉았는데, 아는건 하나도 없고 프로그래밍 숙제는 해야되서
멍하니 모니터 보던 생각이 났다.
커서가 깜박깜박그러는건 학교다닐때나 프로그램 짤때나 마찬가진데,

학교다닐때는 "빨리 다음 글을 입력해주세요"하고 깜박이던 커서가
"자.. 다음 line에는 어떤 code를 넣어서 프로그램을 만들껀가요? 프로그램 짜주세요"하며 다른 뜻으로 깜박거리는거였다. 커서 앞에서 한없이 한심해지던 내 자신..
그때가 문득 생각났다.


기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쩌다가 이 녀석은 나한테 왔을까? .....???

음...

모르는건 참 많은데, 알아야되는건 해야할건 많기도 참 많구나.


"책상 위 먼지"


아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보고 부딪히고, 그리고 또 친해질려고 하다보면
조금씩 더 알게되겠지.

Phantom Power 때문에 간만에 옛날 생각나면서 눈물 쫌 나는 날이었다.
갑자기 너무 여러가지가 생각이 몰려와서,
가뜩이나 나처럼 생각 많은 인간은 정말 마음 아팠던 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포기하지는 않는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겠지.
그래.. 아까 말씀처럼 자꾸 부딪히고 움직이니까 더 부딪히고 깨지는 일이 많은거겠지 싶다.
다치기 싫다고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으면 깨지고 넘어지고 아플 일도 없을테니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지금 프로그래머로 일하는건
기적이다.

한때는 화가지망생이었고, 또 한때는 작가지망생이었다가
공무원 준비생이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아니면 여행작가나, 옷 만드는 일을 하거나 또는 스튜디어스(하하)도 될뻔 했었는데 말이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됐을 수도 있을려나? (하라고 하니까;;; 준비라도 할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재수좋아 잘 들어갔으면 방송광고협의회에서 일하거나, 은행직원이 되서 돈을 열심히 세고 있었을 수도 있었을까? 근데 그건 모를 일이다. 

하고 싶다고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데 연극배우나 실력도 안되는 뮤지컬 배우가 되긴 어려웠을거 같다.
부정확하고 줄줄 세는 발음(구강구조나 아무래도 치아구조 때문인듯)을 극복하고 동화구연이나 성우일을 할 수 있었을 턱도 없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건, 진짜 운이 좋거나 잘 맞아야만 가능할거 같다.
하고 싶은 희망사항과 실제 하고 있는 일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런데 한가지 확실한건, 살면서 내가 하는 일을 내 맘대로 선택하지 못했던거 같다.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는 정교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어렵고 힘들때도 많지만, 그때마다 어떻게 어떻게 지나고
그리고 살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알다가도 모르는게 인생인거 같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내일에 대한 기대할 수 있다는건 좋은 일인거 같다.
나도 앞으로의 내가 궁금하다. 앞으로 무슨 좋은 일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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