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지하철, 버스 분홍 임산부 배려석 : 그래도 아직까지는 온정이 살아있는 세상 본문
지하철, 버스 분홍 임산부 배려석 : 그래도 아직까지는 온정이 살아있는 세상
병원에서 임신 확인서를 받고 보건소에 갔을때 이 뱃지를 받았다.
그런데 그 즈음에는 배가 그렇게 나오지 않아서 잘 티가 나지 않고, 가방에 달아봤자 잘 보이지도 않고 손목에 두르고 있기도 애매해서 힘든데도 꿋꿋하게 서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진짜 힘든때는 이 뱃지를 받기 전, 다시 말해 임신인지는 알았지만 병원에서 임신 확인서를 끊어주기 직전에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때였다. 그 시기에 멀미나서 지하철 타고 가다가 주저앉아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써주기를 바랬던건 아니지만, 땀 뻘뻘 흘리며 핑 도는걸 간신히 참으면서 목적지까지 가곤 했다.
배가 슬슬 나오고 중력을 이기기 힘들어지면서부터는 아기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뱃지를 손목에 두르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다. 북적이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선한 분들을 만나 양보받아 가는 일이 많아졌다.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서 얼굴에 철판 깔고 앉아 계시는 분들께 고개 꾸벅 숙이며 자리에 앉을 수 있는지 물을 때도 있었다. 배가 나오니까 정말 힘들다.
이젠 누가 봐도 배불뚝이 임산부이다 보니 굳이 뱃지를 손목에 두르지 않아도, 양보 받거나 운좋게 앉거나 한다.
그런데 댓글이나 어디 블로그나 기사에서 보는 것처럼, 임산부석에 앉아 계시면서 내가 타면 빤히 쳐다보다가 자는척 하거나 모르는척하고 훅.. 고개 돌려버리는 분도 있다. 갑자기 핸드폰 삼매경에 빠지거나.. 에휴. 그러면 나도 민망하다. 내가 맡아둔 자리도 아닌데 매번 비켜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가뜩이나 붐벼서 배가 부딪힐까봐 곤두서 있는데, 자리 원망까지는 할 수가 없는거다.
이런데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온정이 살아 있다는걸 느끼는 때도 있다.
그렇게 낑낑거리며 힘겹게 서서 가는데, 저기 좀 멀리서
"거기 애기엄마 이리 와서 앉아요."
하고 불러서 자리 양보해주시는 분들도 계신거다. 보통 점잖게 생기신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인 경우가 많다.
오늘도 이런 분들을 만나 붐비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운좋게 자리에 앉아서 집에 올 수 있었다. 배가 무거워 힘에 부칠 즈음이었어서 그런지 괜히 울컥했다. 그러고보니 임산부석에 앉으려다가 나를 보고는 자리 양보해준 키큰 청년과 예쁜 아가씨도 있었다. 많이 피곤해보이던데, 정말 고마웠다. 고맙다고 인사를 몇번씩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배속에 아기에게 "그래도 세상엔 좋은 분들이 있다."라고 조용히 말해줬다.
그전에는 "분홍색 의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막상 나도 내 일이 되다보니까 전에 무신경하게 살았던 생각에 반성하게 된다.
'[글]쓰기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4년 서울대공원에서, 13년전의 나 (2) | 2017.09.26 |
---|---|
9월 생일, 만 나이를 하나 더 먹다 (0) | 2017.09.05 |
행복한 글쓰기, 글을 타이핑한다는건 : 한동안 핸드폰에서 글 쓰다가 오랜만에 키보드로 타이핑해서 쓴다. (0) | 2017.08.26 |
미세먼지와 황사가 최악이었던 토요일, 하지만 어버이날 전이라서 움직여야 했던 날 (0) | 2017.05.06 |
당연한게 당연하지 않게 됐을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 (2) | 2017.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