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금동대향로와 추석 말말말 [얼룩소 갈무리] 본문
얼룩소에 쓴 글입니다.
2024년 9월 24일
제목 : 금동대향로와 추석 말말말
우리집 추석 연휴는 9일만인 월요일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추석 앞에 주말부터 추석연휴 3일을 포함하여 목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주말까지 긴 추석 연휴를 보내게 됐다.
연휴 끝나고 떠난 여행
(아름다운) 금동대향로
금동대향로는 정말 아름다웠다.
듣던대로, 그리고 다른 분들의 글에서 봤던 것처럼... '아름답다'라는 말보다 훨씬 더 근사하고, 굉장한 단어가 있다면 그 말로 적어주고 싶다. 부여박물관에 가면 이거 하나는 반드시 봐야해요 라고 했던, 어느 역사선생님의 말씀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
올봄 공주에 갔을 때, 다음에 언제 한번 오자 했던 부여를 이번에 가게 됐다. 시부모님 산소가 있는 전라남도 어느 섬에 다녀오는 길에, 서울로 오기 전에 하루 묵게 되었다. 여행일정은 교통 정체 등을 생각해서 추석 연휴 지나고 갔다. 일기예보를 보고, 목요일과 금요일 일정을 바꿨다.
다행이 비를 피해, 모든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스마트폰에 담아온 금동대향로와 소개 영상 시연 때 찍었던 사진을 보며, 다시금 아름다움을 되새기고 있다. 두고두고 꺼내볼만큼 아름다운 유물은 처음이다.
추석 말말말
이번 추석은 너무 더웠다.
이제는 추석이 아니라, '추하'라고 해야한다고 할 정도였다. 30도가 훌쩍 넘는 습하고 무더운 3일이었다. 친정에 갔다가 큰형님댁에 간게 전부였지만, 기억에 남는건 너무 더웠다는 사실이다.
이번 추석 전후로 오가며 들은 기억나는 말 세 가지를 적어볼까 한다. 추석과 더위는 가고, 들었던 말이 남았다. 말도 곧 쓰면서 스르르.. 떠날 것을 믿는다. 어떨 때는 기억하려고 쓰는게 아니라, 잊기 위해 쓰기도 하니까.
01
(아이도 초등학교 들어갔는데)
이제 뭐해?/ 뭔가 해야지
두어번 들은 이야기다.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도 들어갔는데(이제 한숨 돌렸는데), 나는 뭐하냐는 질문이었다.
"돈은 못 벌지만, 돈 안 되는 취미 생활은 여러가지 하고 있어요." (이건 여러번 본 분들께 한 대답)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별로 안 좋아서, 쉽지 않아요." (이건 자주 안 보는 분들께 한 대답)
딱히 내가 뭔가를 하는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뭔가 할 말을 찾다보니 물어보신거라 생각된다. 그래서 그냥 묻는 말에 일일이 내가 뭘하며 지내는지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렸다.
설사 정성스럽게 답을 하라도, "일해요 (취직해서 돈을 버는 일)"가 아니면 의미 없을 것 같다. 결혼한지 좀 되었으니, 아이를 낳아야지/ 이제 나이도 있는데 집 하나 장만해야지/ 하나만 낳고 말꺼야? 둘째(흐흐.. 극노산인 나에게도 둘째를 묻는 분이 가끔 있다.)는 등등의 그냥 하는 질문과 비슷한 결의 질문이 될 예정인가보다.
어떻게 들으면 기분 나쁘지만, 알고보면 그냥 하는 질문이니 넘겨버려야할 또 하나의 질문. 나는 이런류의 질문에 강하니까.. 웃으면서 답할 생각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돈이 안 되는 많은 일을 하루종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뭐 할 수 없지. 듣고 잘 흘려버려야지.
02
얼굴이 왜 이렇게 탔어
이건 처음 들은 말이다. 흠..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똑같네"라는 입 바른 소리를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얼굴이 탔다니! 예상 외의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할지 순간 망설였다. 예전에는 하앴는데, 이제 까매졌다는걸까? 뭐지? 뭐라고 답을 해야할지 당황해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썬크림 열심히 바르고, 암막양산 잘 쓰고 다녀야겠다. 까맣다는 얼굴이 다시 하애지지 않을 것 같다. 더 타지 않게 잘 관리해야겠다.
03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젊어보이시네요
이건 좀.. 아니 이것도 조금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나야 귀에 인이 박히게 할머니냐?는 질문을 수도없이 많이 들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남편이 당황했다. 남편이야말로 '할아버지' 소리를 처음 들었으니까.
혼자 다니면 누가 나보고 할머니냐고 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와 함께 다니면 또또.. 엄마냐 할머니냐고 많이 묻는다. 그게 궁금한가? 궁금하다고 또 그걸 왜 물을까? 처음 보는 사이면서 물어보는 분의 심리가 나는 더 궁금하다. 알면 또 뭘하나. 아무튼 그래도 많이들 물어보시니까, 어금니 꽉 깨무는 수밖에.
머슥해하는 남편에게 눈을 찡끗하면서
"저기 저희는 할머니랑 할아버지 아니고, 엄마랑 아빠예요."
라고 정중히 답을 했다. 자기 기준으로 물어보는 것일테니.. 우리가 늙어보였나보다. 초극노산을 한 내 입장에서는 누군가 비슷하게 늦게 낳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애를 늦게 낳았는가보다 하고 말텐데. 참 이상하다. 그냥 아이 보고 귀엽다. 하시면서 지나가시면 좋은데.
남편이 많이 얼얼한 모양이었다.
맨날 나만 당하고(?) 살았는데.. 자기에게도 할아버지 운운하니 놀랐을듯. "이제 그런 소리 들을만하지" 하고 말았다. 지나가는 사람의 말에는 상처 받지 않기로 했다.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니까. 뭐라고 하면 안 된다.
그나저나 며칠 지났다고, 들은 말도 잊어버렸나보다. 이 글을 쓰면서, 위에 들은 말 중에 하나는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서 낑낑댔다. 한때 심하게 괴롭히던 더위가 스르르 물러간 것처럼, 잠깐 쓰리던 마음도 스르르 풀리고 곧 잊혀지기를 바란다. 앞으로 비슷한 류의 말은 계속 계속 들을 수 있다. 뒷끝이 짧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들을 때마다 화나는건 사실이라...)
시나브로 겨울에 가까운 가을이 됐다.
원글 링크 :
https://alook.so/posts/4XtOMEp?utm_source=user-share_Dotd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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