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이젠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찍거나 씁니다. [얼룩소 갈무리] 본문
2022년 12월 22일
제목 : 이젠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찍거나 씁니다.
그림 그리고 싶었는데
사정상 포기를 해야했습니다.
그리는 대신 글을 쓰거나, 핸드폰으로 찍습니다.
만화, 만화가, 만화방이 천시되었다는걸 보다가 생각났습니다. 그렇죠. 예전에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낮게 보았나 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학원을 다녀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인지, 그냥 듣기 좋은 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무언가에 재주가 있으니 한번 해봐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가요. 눈앞에 뭔가 촤악 깔리면서 성공대로를 걷는 그런 기분이 들죠. 가뜩이나 삼남매 중에 공부로는 쳐지는 입장이었으니 눈이 번쩍 했습니다.
부모님은 처음에는 반대하시지 않고, 한번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학원도 한달인가? 두달인가 다녔구요. 한양대학교 앞 화방에 가서, 그림도구도 사주셨습니다. 그런거 보면 막 반대하고 그렇지는 않으신거 같은데...
두달쯤 됐을 땐가?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집에 '화쟁이'는 안 된다구요. 그게 뭐야. 화쟁이? 그림 그리는 사람을 낮춰 말씀하신겁니다. 아마 그건 아버지만의 생각이 아니고, 사회 분위기가 그랬나봅니다. 1980년대였으니, 아마도 그랬던듯 합니다.
그런데 역시 천지가 개벽하여, 2022년에는 웹툰이라고 만화가 이렇게 환대 받는 세상이 될 줄은 모르셨겠죠. 아버지는 1987년 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그림 공부하고 싶다고 물었다가 혼이 났습니다. 당연하지만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쉽지 않은 상황에, 삼남매를 공부시켜야 하는 어머니의 반대는 당연했습니다. 미대까지 가려면 드는 돈이 만만치 않더라구요. 일반학교에서 미대 갈려면 공부도 상당히 잘해야 하구요.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문제는 마음이 닫혀버렸습니다.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말을 안한건 아니고, 필요한 말만 했습니다. 다 닫고, 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살았던거 같습니다. 그러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구요. 글이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연습장에 휘갈기듯 써나간 어설픈 문장이 매일매일 밤에 일기가 되었습니다. 글은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도 해줬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들볶이며 살아도 보고. 아이 낳아 엄마가 되었고요. 오늘을 살아갑니다.
만약에...
라는 가정법을 생각해 볼 때가 있는데요. 만약에 예전에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좋았을까? 아니었을까?
예전에는 좋았을 것 같아! 라고 말했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어쩌면 다른 길을 가보아서 얻은 이익도 있겠다 싶어요. 뭘했든 버릴게 하나도 없는게 인생이더라구요.
지금은,
그리는 대신 글을 씁니다. 가끔 6살 딸아이와 같이 그리기도 하구요. 아이가 졸라서 뭘 그려주거나 만들어주는데, 아주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리는 대신
사진을 찍습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들고 다니는 전화기로 언제든 뭐든 찍을 수 있어서 참 좋더라구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은데, 사진도 좋습니다.
오늘도,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적습니다. 아까 찍은 사진과 함께..
추억을 그릴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원글 링크 :
https://alook.so/posts/J5tWGRn?utm_source=user-share_Dotdl1
'화쟁이'를 포기하고 입을 닫았던 때를 떠올립니다./ 이젠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찍거나 씁니다.
지난주에 쓰신 글을 보았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직전에 있었던 슬픈 사연. 하필이면 그 동네는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어,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입니다. 덕분에 '그림'에 대한 추억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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