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낡고 불편하지만) 살다보니 정이 든 보금자리 [얼룩소 갈무리] 본문
얼룩소에 쓴 글입니다.
2023년 9월 14일
제목 : (낡고 불편하지만) 살다보니 정이 든 보금자리
이사갈 준비를 하기 시작한지 두어달 됐다. 다음 세입자가 될 손님들이 집을 보러온다. 낡았다/ 불편해 보인다/ 아쉽다 등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에서 살았던 8년을 추억하게 됐다.
완공 후 한번도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낡은 아파트
2016년 1월 한참 추운 날 이 집에 왔다.
그땐 한참 전세대란이다 뭐다해서 집 구하기가 어려웠다. 적당히 조건이 맞아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바로 들어왔다. 1998년에 지어진 후 한번도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집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낡았고 손 볼 곳이 많았다.
도배도 해주지 않아서 우리가 도배를 하고, 너무 더러운 곳은 페인트 칠을 했다. 그렇게 하나씩 손보기 시작했다. 그때는 중앙난방이어서, 난방이 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던 때라 많이 추웠다. (2년 전 개별난방으로 바뀌면서 따뜻해졌다.)
여러가지 작업들
베란다 문이 틀어져서 바람 들어오는 것도 막고, 현관문 사이로 바람 들어오는 것도 막았다. 다용도실 문 틈 사이 들어오는 바람도 막았다. 난방 관련 작업(?)은 기본이었다. 낡은 아파트는 손 볼 곳이 정말 많았다. 내 집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가족이 사는 곳이니 고칠 수밖에 없었다.
아래층에서 음식냄새가 심하게 올라와서 검색해보다가 후드에 '전동댐퍼'를 설치했다. 전동댐퍼 설치하면서 후드도 바꿨다. 이것 덕분에 그나마 음식냄새를 많이 막을 수 있었다.
싱크대 하부장이 오래된데다가 물이 떨어지고 하다보니 우둘두둘해져서, 시트지를 붙였다. 붙이면서 싱크대 서랍들도 붙였다. 우리가 나가면, 싱크대도 새로 바꿔준다던데...
사는동안 예쁘게 잘 살았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서랍에는 그림도 붙여두었다. 고치면서 손때가 묻고, 정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화장실 거울 아래도 까뭇한 자욱들이 보기 흉해서 하얀 테두리 시트지를 오려 붙였다. 그래도 이런 모양 흉한걸 고치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화장실도 우리 이사 나가면 새로 리모델링해주신단다.
변기레버가 망가져서 고쳐야했던 일이 제일 황당하다. 수리하는 분이 와서 빵끈으로만 묶고 가셔서, 나중에 케이블 타이 사다가 내가 다시 묶었다.
형광등이 오래되어, 단종 직전의 모델을 찾아 동네 한바퀴를 다 돈 일도 있다. 역시 우리가 이사 나가면 등도 다 바꿔주신다던데..
설겆이할 때 눈이 어두워서 우리 돈내고 바꾼 일체형 LED등도 문제가 있었다. 이거 기술자 부르면 출장비 내야한대서, 내가 사다가 바꿨다.
아..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집이었다. 이런 자잘하고 큰 덩어리의 잔업들을 해야만 했다.
시간과 함께 쌓인 정
고마운 보금자리
도배한 것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도배지가 찢어져서 뜯어내고 시트지를 다시 발랐다. 시트지, 기포없이 잘 붙이기 정말 어렵다.
내 집이 아니었어도, 8년동안 손때와 시간이 묻어서 그런지 정말 소중해졌다. 예비 세입자들에게 낡았다/ 화장실 1개다/ 불편해 보인다 등등의 서운한 소리를 듣다보니, 더 뭉클한 마음이 든다.
비록 낡고 오래되고 조금은, 아니 많이 불편했어도 우리 가족한테는 아늑하고 편안한 보금자리였다. 나쁜 점 말고 좋은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랬다. 당시에는 투덜투덜 불편했는데, 지나고보니 좋은 마음만 남은지도 모르겠다. 때론 속상해서 울기도 했는데.. 하하.
회사와 가까웠고, 지하철역들과도 가까웠던 편리한 곳이었다. 큰 시장도 가깝고. 다만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저평가된 동네다. 한자 간판이 이젠 눈에 친숙하다.
27년전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서울 올라온 남편이 처음 살기 시작했던 동네. 그리고 잠시 떠나있다가 8년전 이사와서 셋이 되어 떠나게 된 집이어서 더 뭉클하다.
고마웠어.
정말..
원글 링크 :
https://alook.so/posts/0ktmy9D?utm_source=user-share_Dotdl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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