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몽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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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인연, 자발적 고립에 관하여

28년전 첫번째 직장에서 만나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동생이 있다. 전 직장 동료라 부를 수 있는데, 언젠가부터는 친한 동생으로 바꿔 부르는 2살 아래 동생이다. 나보다 세상 물정에 바르고, 바른 말도 딱딱 큰 소리내서 하는 똑순이다.
우리는 혈액형부터 다르다.
나는 소심한 A형이지만, 그녀는 대찬 B형이다. 공통점도 없다. 우리가 실제로 같이했던 시간은 첫 직장 3개월(나에게는 첫 직장. 3개월) 뿐이다. 이후에는 아는 사이로..
현재까지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
아니 있었다. 라고 과거형으로 쓰는게 맞겠지. 작년 12월말 이후로 연락이 끊어졌으니까.
긴 시간동안 우리가 연락을 이어올 수 있었던건,
그녀의 노력 덕분이었다.
잊을만하면 먼저 연락을 했으니까.
문자를 주고 받다가, 가끔 전화를 했다.
내가 미국 살 때는 이메일을 잊지 않고 보냈다. 내가 먼저 한 적도 있는 것 같다. 희미하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 같다.
결혼하기 전에는 가끔 만났다.
결혼 후에도 종종 만났고, 심지어는 미국 살 때도 한국 들어올 때마다 만났다. 감사하게도 시간을 내주었다.
아이 낳고는 못 만났다.
딸아이 돌 때는 그녀가 딸과 함께 와주었다.
아이 키우면서 바빴다기보다는..
전업주부가 된 후 자격지심 때문에 먼저 연락을 못했다. 전업주부 육아맘의 일상은 늘 똑같았고, 할 이야기도 늘 똑같았으니까.
그래도 감사한게 그녀가 늘 내게 전화를 먼저 걸어줬다. 카톡이 아니라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7년째 얼굴 한번 못 본채
전화나 톡으로 이어오던 연락이 작년말에 끊어졌다.
누군가의 의지로 관계를 이어가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일을 놓아버린 전업주부와 워킹맘의 공통점은 많지 않으니.. 일만 놓아버린게 아니라, 모든 관계도 놓아버린 나였다. 본의 아닌 손절도 당하고, 좌절도 당하고. 이제는 그냥 그냥 살아가고 있는 나다.
그래서 이렇게 된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부턴가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했다. 계속 연락하는 관계란 딱 이 동생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어디서 온지 모르는 도토리 한알에 마음이 갔다.
너는 어디서 왔니?
어디로 가니?
혼자 이 초록 바닥에서 쓸쓸하지 않니?
본의아니게 커피를 많이 마셔버린 밤.
늘 그렇듯 등은 시리고. 아니 아리고. 여러 생각이 우수수 몰려왔다가 또 우수수 몰려간다. 쳐내야할 할일에 쫓겨, 시간에 쫓겨 허덕이는 낮이 아니라서 이런거다. 날이 밝으면 또 생각없이 부지런히 당장 할일 하며 번잡하게 살 것이다. 아마도.
인연이면 계속 이어지고, 아니면 끊어지겠지.
그동안이었어도 오랜동안 정말 고마웠다.
겨우 3개월 함께 한 인연인데, 28년이나 이어진거면 차고 넘치게 감사한 인연이었다.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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