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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몽의 하루

종이에 남긴 나에 대한 기록 (1989년부터 2004년까지) - 16년 동안 쓴 내 역사 본문

[글]쓰기/나의 이야기

종이에 남긴 나에 대한 기록 (1989년부터 2004년까지) - 16년 동안 쓴 내 역사

sound4u 2013. 6. 1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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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9년전 블로그 시작한지 1년쯤 됐을때

갈무리해두었던 내 종이 일기장이 떠올랐다.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장장 16년이라는 나름 긴 시간동안 하루하루 기록해두었던 소중한 친구였던 일기.

결혼하고, 미국가면서 부피도 그렇고 어디다 보관하기도 애매해서

이 사진만 찍어놓고 버렸다.


종이에 쓴 일기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끝에 듣던 사람들이 묻는다.



"그래서 그 일기, 지금 어딨어요?"


"버렸어요."


"네? 몽땅요? 하나도 안 남기고?"


"네."


"아깝지 않아요? 그래도 오래 쓴건데..."


"아니오. 괜찮아요. 너무 아픈 시절이었기도 해서, 묻어버리고 싶었나봐요. 잘 됐어요. 잘한 일인거 같아요.

앞으로 살면서 더 잘 살고 싶고 그래요."



그랬던게,

오늘은 조용해서 그런지 뜬금없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글과 사진을 몽땅 옮겨왔다.


2004년부터는 온라인에 글을 남기기 시작해서, 2013년 현재까지 계속 블로그에 삶을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에만 글을 남기면 서운한 부분도 있고해서

가끔 종이에 글을 남기기도 한다. 매일 남기지는 못해도...



옮겨오면서 다시 보다가 그 옛날 생각에 푹 잠겨버렸다. 24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나인>신드롬인가 ^^?

드라마 "나인" 증후군?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버리고, 그때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려봄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나의 시간여행.


2013/06/09 - [[글]읽기/드라마 / TV] - 드라마 <나인>... 선택, 추억,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다/ 긴 여운을 남기다






제목: 일기쓰기 16년...35권 써버리기

날짜: 2004-10-01 (Fri) 23:02


디카 생기면 제일 먼저 찍고 싶었던게 실은 일기장이었는데, 그냥 생각나서 한번 찍어봤다.

찍으면서 넘겨보다가 또 잠시 옛날 추억에 잠겼었다.


남들은 글쓰는게 고역이라는데, 난 쓰는게 습관이 된터라.

별로 어렵지가 않았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한명 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막 난잡하게 늘어놓으면 이렇다.

되게 정신 없어보인다.


대체로 대학노트에 써서....35권이다.




쌓아놓으면 이 정도 높이다.

뿌듯하다. 진짜.




1권은 기념비적이어서 찰칵..

처음에는 그냥 막 쓰는 연습장에 썼다.

표지가 노랗게 바랬다. 




1989년 5월에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숙제도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나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초라한 시작. 제1권에 첫번째로 쓴 일기.

글씨 정말 못 썼다.


초반에 쓴 일기는 읽고 있자면 왠지 갑갑하고

생각이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채

거의 넋두리에 가깝다.


맨날 성적 얘기만 줄창 나온다.

그땐 정말 성적이 최고의 문제였나보다.




고등학교 2학년때다.

때에 따라서는 그림도 그렸었나보다.

내가 써놓고도 20년 훨씬 전이니까 가물가물하다.




고3때 쓴 일기.

공부도 잘 안하고 좌절모드인 나를 위해

언니가 써준 쪽지였는데 그걸 붙여놨다.


언니한테 하룬가? 이틀인가? 과외받다가 눈물나게 혼난 날이었을꺼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참가해서 쓴 일기.

(왜 근데 예전꺼는 다 연필로 썼을까? 연필이 편했었나보다. 연필이 아니라 샤프로 썼겠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때보다 문장력이 많이 향상되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한..3년쯤 썼을때니깐, 3년 사이에 많이 나아진 모양이다.




전기대 낙방한 이야기 .

사건만 주르륵 나열해놓았다.




처음으로 프로그램 짰다구 신나서 쓴 일기.


학원에서 COBOL로 프로그램을 짰다.

아..  지겨웠던 코볼.

종이에 코딩하는 것도 지겹고, 에러도 잘 나서 정말 싫어했다. 지루하기도 했고.


그래도 처음으로 프로그램 짰다고 되게 좋아라 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표지가 이뻐서 냉큼 산 노트가

집에와서 뜯어보니 하필 오선지 그려진  음악시간에 사용하는 노트였다.

그래서 그냥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오선지에 글썼다. 근데 이것도 나름 괜찮았다.


<학문의 즐거움> 재미있게 봤던 책이다.

글쓴이가 상도 받았다는 꽤 괜찮은 수학자였는데, 그렇게 굉장한 것치고

겸손했고,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존경스러워서 2번 정도 읽었던 생각이 난다.




시험 망쳐서 와글와글 분풀이 한 일기.

화풀이 분풀이 넋두리.


참 별별 사연이 다 있었다.


"문법론" ...

얼마만에 들어보는 이름인가.




표지가 예뻐서 산 노트에 쓴 일기.




문학비평..그룹에 들어서 글읽고 토론하는걸 했었는데.

그때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를 동숭아트센터에 가서 사람들과 같이 본 일을 썼다.

변영주 감독이 무대로 나와서 인사를 했는데.

참 씩씩한 감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학비평 모임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는.

지금 석사과정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난? 나는..

프로그래머의 길을 걷고 있다.




문학비평 모임을 하면서

쓴 일기는 거의 작품에 가깝다.

표현력이나 정리 등등..


놀랍다.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20대 절정에 쓴 글들이라 애착도 많이 간다.

일기라기보단. 작품에 가까운 글들이 많다.




대학 졸업 후 백수생활할때 절규하면서 쓴 일기.

진짜 많이 괴로웠다.




공무원 시험공부하면서 마포도서관에서 마음이 괴로울때

조그만 수첩에 글을 써서 스스로를 위로했었는데.

그때 쓴 메모들 다 붙여서 보관해놨다.


낙방과 실패에 관한 백서




옛날에도 미치기 직전까지 갔었구나.

예나 지금이나 잘 미치는 성격이다.




쪽지 몇장 읽다가.

젊은날에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때도 살기 참 힘들었다. IMF 때였지. 아마..


대학 졸업하고, 뚜렷한 목표없이 자리를 잡지 못한 그 시절은
정말 힘들었다.

(그러고보면 지금 감사해야 하는데.. 그 힘든 시절을 잘 지나왔으니 말이다.
다시 돌아가기 싫다.)



울집 아저씨가 써준 메일을 프린트해서 붙여놨다.


지금은 메일도 안 써주는데

그땐 메신저도 없고

전화도 없고 고작 삐삐가 전부여서


메일 쓰고 받고 하는게 낙이었는데.

정성스레 써준 메일도 참 감동적이다!







면접보러 다닐때구먼.

면접. 증말 많이 봤지. 입에서 단내날정도로. 흐...신산한 삶이라니깐




이건 대학교때 쓴 수필인데,  프린트해서 붙여놨다. 


4학년때 어느 초여름날, 수업을 교실에서 하지 않고 학교 뒷산 암자로 가서

거기서 자연을 느끼고 왔다.


교수님이 "누가 오늘 일 글 좀 써볼까?" 하시는데

하필 나랑 눈이 딱 마주칠게 뭐였담. 그래서 쓰게된 글이다.




영화 <타이타닉>이 한창 날릴때

영풍문고 문구매장에서 산 노트.


기념으로 여기다가 일기를 썼었다.

푸허허. 앞장과 뒷장.




이때는 종로거리에 타이타닉 음악만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굉장했지.




여의도 회사 다닐때 쓴 일기.

루니튼 노트는.. 만화캐릭터도 있고 해서.

좋아라 열심히 썼었는데.




안철수 바이러스 연구소에 면접간 날 쓴 일기.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기분이었다우. 참가 자체로 영광스러운..)




눈 많이 온날 쓴 일기.

옆에 캐릭이 귀여워서 산 노트였음. 이 노트도..




롯데월드 호텔에서 모바일 세미나 듣다가.

중간에 핸드폰 문자 확인하다가.


회사에 메일이 이상하다구 하는 메시지 확인한 다음에

세미나 포기하구 회사가서 고치고 와서 

다음 트랙 들은 날 쓴 일기였다.


세미나 그래두 참 많이 갔었다.




비 정말 많이 왔다.




29일이 있는 날이 4년에 한번씩이라 기념으로 쓴 일기.




언제 살기 힘들고 퍽퍽해질때, 이 글 하나하나 읽으면서(일기도 같이 읽으면서)

힘을 내야겠다. 


정말 죽을거 같고, 정말 숨이 막히고, 앞이 보이지 않고 힘든 고비를 여러번 넘고 또 넘어왔었구나.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잊고 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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